Ground Zero
그라운드 제로


Ground Zero

The world was once an object of conquest and control. In it, humans wrote the chronicles of exploration and discovery without a hitch. However, the age of abundance and prosperity did not last long. The world is changing rapidly and unexpectedly. Humans, on the brink of energy and resource depletion, have been predicting when living organisms – including themselves – will go extinct, warning each other to stop. Meanwhile, mankind suffered yet another global epidemic, but not knowing what to do and feeling utterly lost, they only yearn to go back to the world before the pandemic. The end of the world was not rendered visible by humanity in the past. The human race instead had conviction that the advances in science and technology will solve all the problems that they would someday. In a world of uncertainty, however, such complacent knowledge and beliefs did not work. Ground Zero portrays today’s world moving in such an unpredictable way as well as humans keeping sticking to the who obstinately cling to the past that they cannot alter or return to.

In Ground Zero, the topographical images reveal the precariously changing world. A conceptual worldview devoid of any information, such as specific location names and dates, is presented to the viewers, and short verses have been inserted in between the stages of transition and change in the universe. The work is a story of contemporary human beings who have been thrown into turbulence and must live commonized lives. It also delivers the voices of those running away from images of language converted to numerical values, refusing to live in sluggish and standardized manners. These individuals imply that blind faith in a world derived from objective data ultimately drives us to fear and a sense of crisis.

Most human beings (including ourselves) live like figurines in Ground Zero. At a glance, they seem to live in their respective places and with diverse gestures. However, at times of abrupt changes such as when a deluge of rain would cease to reveal the sun which scorches and cracks up the soil, standardized life and common knowledge that they have maintained for a long time cannot exert any power. It is at this particular juncture when the tragedies experienced year after year by the globe and humanity begins.

Even when facing a disaster, the human models in the video cannot abandon their values of life that they have kept for long, sitting tight where they are. Their gestures and facial expressions do not vary even as the figurines get rained on and drown in the torrential downfall, creating a parallel with those of us who undergo unprecedented COVID 19 lockdowns and quarantines but can only long to return to pre-pandemic normality.

The short stanzas inserted in various parts of the video represent the voices of those who wish to live without being constrained or captured. They are messages directed at today’s people who do not budge in the midst of a drastically changing world. The verses do not offer an analysis or explanation on the universe and humans; they simply appear like a flickering flash from a collapsing world and prompt random remarks on each of the restraint-defying individuals' specific experiences and imaginary scenes.

Nevertheless, the human models in Ground Zero disappear amidst a disastrous flood or severe drought, clinging to each of their attitudes to and values of life and thereby failing to narrow the distance between themselves. The scenes which unfold slowly and often show twists in image imply that the model world and humans in Ground Zero are existences documented in a film – that is, contemporary humans who pursued a particular value. The work is a record of a side of humanity that failed to stand in solidarity and lived life without immediate experience or sensory apprehension of the world. Thus, Ground Zero does not serve to immerse the viewers in a real realm, but instead urges them to perceive its depicted world as a reassembled one, similar to those in mythological tales; picture the systems of nature and life in the contemporary era; and reflect the inabilities and deficiencies manifested by the humans living in it.

The film strip presented by Moojin Brothers reminds the viewers that the time of disaster is not one-off, nor does it have a definite start and end. It questions how we can intervene in and escape from the past recorded as an objective history by the physicality of the film itself and the images of disappearance, and the future thereupon foretold.

When everything, including the film records of the model world and humans portrayed in the video, is gone, a new Ground Zero emerges. This new film is entirely up to the audience – not the accomplices who perfunctorily count the days until their doomsday in the face of a disaster rendered visible, but the contemporary viewers who will deliver alternative visions and new narratives.



그라운드 제로

한때 세계는 정복과 지배의 대상이었다. 그곳에서 인간은 탐험과 발견의 연대기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하지만 풍요와 번영의 시대는 오래 가지 못했다. 세계는 급격하게 이변(異變)하고 있으며, 에너지와 자원의 고갈 앞에서 인간은 스스로를 포함한 생명체의 멸종 시기를 예측하며 서로에게 멈춰야 한다고 경고해 왔다. 그 와중에 인류는 또 한번의 범지구적인 전염병을 앓게 되었지만, 사실상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한 채 방황하다 그저 팬데믹 이전의 세계로 되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과거의 인류에게 멸망은 가시화되지 않았으며, 오히려 과학과 진보한 기술이 언젠가는 당면한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란 믿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변하는 세계에서 그처럼 안일한 지식과 믿음 체계는 통하지 않았다. 그라운드 제로는 이처럼 종잡을 수 없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상을 그리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이킬 수도 회귀할 수도 없는 과거의 삶을 고집하는 인간을 담아내고 있다.

우선 그라운드 제로에서 이변하는 세계는 만들어진 지형으로 드러난다. 구체적인 지명이나 날짜 등의 정보값이 지워진 관념의 세계상을 제시하고, 그 세계상의 흐름이 전환되고 변화되는 사이마다 짧은 시구를 등장시켰다. 난세에 던져진 채 공통화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오늘날 인간의 이야기다. 또한 정체되고 획일화된 삶을 거부하며 수치화된 값으로 치환된 언어 이미지로부터 도주 중인 자들의 목소리다. 이들을 통해 객관적 데이터에 의해 도출된 현실에 대한 맹신은 결국 우리를 공포와 위기의식으로 몰아간다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우리를 포함한) 대부분의 인간들은 그라운드 제로에 등장하는 인간 모형처럼 살고 있다. 언뜻 보면 그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다양한 몸짓으로 다채로운 삶을 영위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비가 쏟아지다 가뭄으로 땅이 갈라질 정도의 이변 속에서 그들이 오랫동안 견지해 왔던 평준화된 삶과 공통된 지식은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세계와 인류가 매년 경험하고 있는 비극의 장면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영상 속 인간 모형은 각자의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은 채 재난이 닥친 상황에도 오랫동안 고수해 왔던 삶의 가치를 버리지 못한다. 폭탄처럼 쏟아지는 비를 그대로 맞으며 물에 잠기는 와중에도 변치 않은 그들의 몸짓과 표정은 코로나19로 유례없는 봉쇄와 격리를 경험하면서도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모습과 닮았다.

물론 영상 곳곳에 등장하는 짧은 시구를 통해 우리는 속박되지 않고 포획되지 않은 삶을 살고자 하는 자들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급격하게 이변하는 세계상의 흐름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동시대인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이들이 써내려간 시구는 세계와 인간을 분석하거나 설명하지 않는다. 무너져 가는 세계로부터 명멸하는 섬광처럼 등장해 각자의 구체적인 경험과 상상의 장면의 무작위한 발설을 촉구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상 속 인간 모형은 폭우가 쏟아지는 재난의 한가운데서, 혹은 모든 것이 메말라버린 상황에서 서로의 거리를 좁히지 못한 채 각자 삶의 태도와 가치를 고수한 채 사라져간다. 그렇게 천천히 흐르다 때때로 반전의 장면을 제시하는 영상의 장면들은 모형의 세계와 인간이 하나의 필름에 기록된 존재, 즉 하나의 가치를 추구하며 살았던 동시대인을 암시한다. 연대하지 못하고, 세계를 직접 경험하거나 감각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류의 단면에 대한 기록인 셈이다. 이로써 그라운드 제로는 관객들에게 실제의 세계에 대한 몰입이 아니라 마치 신화 속 이야기를 듣듯 새롭게 구성된 세계 속에서 오늘날 인류가 처해 있는 자연과 삶의 시스템을 그려보고 그 속의 인간이 보이고 있는 불능과 결핍이 무엇인지 되짚어 보게 만든다.

무진형제가 제시한 필름 스트립은 이 재난의 시간이 일회적으로 흐르고 마는 시간이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 필름 자체의 물질적 제시와 소멸의 이미지를 통해 객관적 역사로 기록된 과거와 이를 바탕으로 추측된 미래에 우리가 어떤 식으로 개입하고 도주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게 된다.

영상 속 세계상과 인간의 모형이 기록된 필름마저 모두 사라진 자리엔 곧 새로운 그라운드 제로가 등장한다. 물론 이 새로운 필름은 온전히 관객들의 몫으로 남는다. 가시화된 재난 앞에서 스스로의 멸종일을 기계적으로 예측하고 있는 공범이 아니라, 좀 더 다른 비전과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동시대의 관객들에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