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霧象(무상)』은 무진형제의 공공미술 연구인 '무상(霧象): 손님이 다녀간 자리'의 연구기록으로 철저히 무진형제의 의문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무진형제는 2020년에 참여형 공공미술 신작을 구상했지만, 코로나19로 인해 다수의 참여가 어려워졌고, 프로젝트 진행 장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집합금지와 사회적 거리두기가 생활화된 가운데 다수가 참여하는 방식과 작업의 실행, 그리고 장소성 등 사실상 공공미술에 관한 모든 것들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霧象(무상)은 이처럼 코로나로 인해 모든 것이 멈춰지고 불분명해진 상황에서 새로운 길을 찾으려는 것에 대한 비유이다. 때문에 이 책은 안개(霧) 속에서 눈 먼 장님이 코끼리(象, 혹은 우리의 공공미술)의 일부를 만진 후 무엇이 진리라고 우기지 않는다. 여러 사람의 의견을 단서로 삼아 각자가 찾던 혹은 표현하고자 했던 코끼리를 추측하고 상상하며, 새로운 코끼리를 만들어보길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한 제목을 짓게 되었다.
공공기관이 폐쇄되고 자가 격리를 해야 하는 답답한 상황에서(霧) 무진형제는 6명의 참여자들과 온라인 서신 및 대면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물론 참여자들과 무진형제는 일정한 간격을, 생전 경험하지 못했던 손님을 사이에 두고 만나야만 했다. 사회적으로 거리를 두고 자가 격리되다 끝내 폐쇄되기도 하는 손님이 다녀갔을지도 모를 자리에서 말이다. 무진형제는 6명의 인터뷰 참여자들과 동시대 공공 미술에 대해 격의 없는 문답(象)을 주고받았다. 심소미·천호균 두 참여자들로부터 동시대의 공공미술과 연대, 그리고 대안적 삶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무진형제가 공공미술 작업을 하면서도 늘 피상적으로만 알아왔던 공공성에 관해 두 참여자들은 구체적인 개념과 경험담으로 답해주셨다. 김성훈·이세원 참여자들과 대화하며 지금 발 딛고 선 자리에서 무엇이 스스로를 멈추게 하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 현실에 기반한 답을 주셨다. 두 참여자들이 전한 이야기들은 팬데믹 시대에 폐쇄된 공간에서 살고 있는 격리된 인간이 각자의 물적 토대 위에서 할 수 있는 많은 가능성의 세계를 알려주고 있다. 이영주·김성일 두 참여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앞만 보며 걷고 있는 동시대인의 속도와 방향성에 의문을 품게 되었다. 이영주 참여자가 추천해준 근현대 소장품들을 관람하며 김성일 참여자를 따라 옛길을 걷다 보면 좀 더 먼 길을 되돌아가거나 우회해서 가는 법을 익힐 수 있을 것이다.
처음 공공미술과 관련해 인터뷰를 제안했을 때 어떤 분들은 다소 난색을 표하기도 했다. 아무래도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공공미술에 대한 견고한 제도적·미학적 편견과 높은 진입장벽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무진형제는 최대한 동시대의 공공성에 초점을 맞춰 각 선생님들의 전문 분야에 따라 질문을 이어가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다 보니 무진형제 내에서도 습관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공공의 개념과 작업의 범주를 좀 더 확장시킬 수 있었다. 독자들도 이 책을 읽는 동안 본인들의 공공미술에 대한 견해 혹은 편견이 어떻게 자리 잡고 있는지 확인하며, 그렇다면 또 어떻게 변화시키고 바꿔갈 수 있을지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