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인터뷰는 2018년 7월 30일에 진행된 한국비디오아트 아카이브 더 스트림 [THE STREAM]의 17th 스크리닝 The Stream X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참여자: 정세라 (더 스트림 디렉터, 이하 정), 무진형제(이하 무)
정: 더 스트림과 토탈미술관이 공동 기획한 전시 《Video Portrait》에 참여하셨고, 더 스트림 스크리닝으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눕니다. 작가팀으로서의 무진형제에 대해 소개해 주신다면요?
무: 저희는 미디어 작가 그룹입니다. 저희 작업이 어떤 하나의 매체로 규정하기가 어려운데요. 영상을 중심으로 커뮤니티 아트, 사진, 구술 등 다양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주로 개인의 기억, 주변 사람들의 경험, 그리고 동시대인들로부터 포착한 이미지나 이야기들을 다양한 미술적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해왔습니다. 사람들이 들려주는 이야기, 고전 텍스트로부터 발견한 어떤 지점들, 다양한 방식으로 포착한 이미지들 등. 이러한 것들을 통해 고립된 인간의 삶, 땅이 들려주는 이야기, 역사로부터 배제된 개인의 기억, 최첨단 기술이 보여주는 인간들의 세태 등을 그리고 있습니다.
정: 더 스트림 스크리닝을 마치신 간단한 소감 부탁드립니다.
무: 가장 더울 때 해서 좀 걱정을 했었는데요.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와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저희는 주로 전시장에서 저희 작업을 봐왔었잖아요. 영상을 전시장 환경에 따라 어떻게 설치할지에 대한 고민이 우선이었죠. 전시장의 환경과 작업 개념에 따라 영상을 어떻게 틀지, 무엇보다 다른 설치물과의 어울림이 관건이었습니다. 영상 작업이 놓인 환경과 오브제, 구조물 등을 함께 고민해야만 했죠. 그런데 이번 스크리닝에서 저희의 모든 작업을 아무런 장치 없이 온전히 영상에만 집중해서 봤는데요. 이게 좀 색다르면서도 꼭 필요한 경험이었다고 생각됩니다. 전시를 할 때도 분명 영상 작업 자체에 대해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인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랙박스 상영관에서 온전히 스크린에만 집중해서 보니 전시 때 못 봤던 것들이 막 보이더군요. 가령 저희 작업 중에 <풍경> 은 내레이션도 없이 오직 자막으로만 읽어야 하는데, 전시 때는 무난히 보이던 자막이 큰 화면에서는 조금 더 작아 보이기도 했습니다. 스크리닝 환경에 따라 영상의 어떤 부분이 두드러지게 잘 보이거나 안 보일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관람객들의 눈높이에 따라 자막의 크기가 달리 보인다는 걸 고려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밖에도 상영관에서의 스크리닝은 작은 화면에서 못 보았던 것들, 오직 영상에만 집중해야 보이는 것들을 발견하게 합니다. 이번 스크리닝을 통해 관객들에게 작업을 보여주기에 좋은 기회였지만, 한편으로는 작가에게도 본인의 작업을 한번에 죽 훑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어 좋았던 것 같습니다. 보통 작업을 만들고 한번에 모든 작업을 처음부터 끝까지 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다시 한번 작업의 전반적인 흐름을 살펴볼 수 있었고, 다음작업 구상에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 얼마전 학생실험영화제 SEFF 2018 에서 상영 후 이야기를 나눴었지만, 같은 영상 작품이 전시와 상영이라는 형식에서 읽혀지는 혹은 보여지는 상황에 의해서 감상이나 비평이 꽤 달라질 수 있는데요. 전시는 설치 환경에 대한 영향이 많이 있을 거고 상영은 극장이나 화이트큐브의 블랙박스라는 닫힌 공간에서 오롯이 콘테츠에 대한 집중이 요하게 되잖아요. 무진형제의 작업은 전시와 상영 중 어떤 점에 더 포인트를 주는지와 그 차이를 어떻게 구현하고자 하는지요? 예로 <더미>같은 경우에는《Video Portrait》(2017)에서는 설치 환경을 만들어서 전시를 했었으니깐요.
무: 이 질문을 받고 저희 작업에 대해 꽤 오랫동안 고민해 봤는데요. 사실 저희 작업이 전시와 상영 중 어느 한 군데를 위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일단 영상을 만들면 온전히 영상 자체에만 집중하니까요. 오히려 영상이라는 작업 물을 만들고 이후에 전시가 확정되고서야 설치를 고민하거든요. 물론 저희의 작업이 처음 선보이는 곳이 미술관이었고 지금까지도 줄곧 전시장에서 작업이 상영되어 왔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금까지는 영상제작에서부터 전시장 설치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에 있어서 설치에 방점이 찍혀 있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실 영상 작가들에게는 영상이 전시되고 상영되는 과정에서 작업이 어떻게 달리 보이는지의 문제가 더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영상이 상영되는 환경에 대해 계속해서 고민해야 하는 이유죠. 저희도 상영회에서 <더미>를 봤을 때 내레이션과 자막, 영상의 텍스처 등 영상 자체가 많이 신경쓰였습니다. 특히 영상의 질감과 영상 속 인물들의 동작, 그리고 전체적인 색감 등 저희도 잘 몰랐던 저희 영상의 특징들을 끄집어내 많은 생각이 들게 만들더라구요. 동일한 작업이 토탈미술관에서 전시될 때는 주변에 버려진 돌이나 시든 화분 등 더미와 어울릴 것 같은 오브제들을 통해서 영상작업이 놓인 환경과 설치방식까지 아울러 고민하게 만든 것 같습니다. 그때는 영상을 트는 티브이도 영상의 텍스처와 전시장 환경을 동시에 고려해 한참을 고심했었거든요. 그밖에 주변 설치물, 오브제, 조명, 사운드를 듣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영상은 이 모든 것 속에서 완성되는 것 같았습니다. 물론 전시에서도 영상의 텍스처와 그밖에 영상 자체의 요소들은 너무도 중요하죠. 그럼에도 사실 전시는 선택의 폭이 더 넓잖아요. 프로젝터, 스마트 티브이, 모니터, 브라운관 티브이, 아이패드 등. 그래서 전시 때는 작품의 결을 잘 보여주는 매체를 이용해 상영하거나 아니면 헤드폰 등으로 외부의 간섭을 최소화 하는 장치를 쓰는 등 조금 더 실험적이거나 혹은 타협할 여지가 많은 것 같습니다. 그에 반해 상영회는 사실 작가의 손이 많이 드는 편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온전히 영상을 제작하는 단계에서 끝나는 것 같아요. 보완할 지점 또한 영상 자체에 있구요. 그래서 상영 과정 자체도 마치 영상 제작하는 과정처럼 생각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영상 작업 그 자체더군요. 그래서 지금까지의 상영회도 그렇고 앞으로도 저희 영상을 블랙박스의 스크린에서 상영할 경우 영상 작업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하고 영상 자체를 좀 더 고민하고 보완하는 것에 힘을 들이게 될 것 같습니다.
정: 무진형제의 작업들은 일상의 발견을 통한 단서들을 수집하고, 서사를 만드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스토리텔링이 주요한 작업들이 초기부터 있었는데요. <더미>의 이토이토 할멈에 대한 이야기, <결구>, <적막의 시대> 등 에서도 사건을 만들고,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구조 등이 흥미롭습니다. 아무래도 정무진 작가님이 문예창작을 전공하셔서 그럴까요? 시나리오나 시놉시스는 어떻게 창작되나요?
무: 저희는 셋이서 함께 생활하다 보니 공통의 경험이나 화제거리가 많은 편입니다. 작업 전에는 회의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인데요. 처음에는 함께 생활하는 과정에서 들은 이야기나 지식이나 이런 것들을 막 쏟아 내다가 그중 셋 다 맘에 드는 이야기나 이미지 같은 것들이 있으면 선택해서 이를 영상으로 발전시킵니다. 저희 작업의 전 과정이 어느 누가 주도해서 끌고 가기보다 사소한 부분까지도 셋이서 함께 하는 편이기 때문에 이야기도 함께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그 과정에서 이야기를 정리하고 서사를 보완하며 영상에서 이를 어떻게 구현할지(가령 내레이션의 어투를 결정하고 언어와 사운드 간의 밸런스 등을 고려하는 등) 고민하고 그로부터 작업 전체의 개념적인 부분까지 이끌어내는 작업을 도맡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또한 무진형제 전체의 동의에 따라 이뤄집니다. 아무래도 제가 글을 쓰다 보니 이야기를 구상하고 만드는 작업에 있어서 좀 더 많은 고민을 할 수밖에 없는데요. 제가 어떤 이야기를 창작해내는 것보다 무진형제 구성원들이 최근에 어떤 것에 관심을 두고 고민을 하며 무엇을 작업화하고 싶은지를 더 세심하게 포착해야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전에 혼자서 글쓰기 작업을 할 때는 글이란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완성되는 것이라 여겼는데, 무진형제 작업을 하며 그 생각이 뒤집혔습니다. 글 또한 공동작업이 가능하더군요. 제 머리가 방전되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조차 무진형제들은 계속 작업을 하고 심지어 <M의 장>과 <태각>, 그리고 워크샵 등을 통해 끊임없이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보니 그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야기는 만들어지기 마련이며 그게 또 어떻게든 작업화 됩니다. 많은 분들이 무진형제가 시나리오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에 대해 여쭤보시는데요. 어떻게 보면 공동작업 과정에서 만들어진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네요. 무진형제가 셋이서 함께 하는 그룹이라 그 안에서만 가능한 작업 방식이 있거든요. 그야말로 저희가 처한 환경과 작업 조건 속에서 저희 영상 속 이야기가 만들어진다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정: <결구>는 시나리오, 연출, 사건, 소품 등 다양한 요소가 마치 한편의 범죄 수사물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데요. 연출을 위해 준비된 소품들을 보면 디테일에도 신경을 쓰신 듯 보였어요. 어떻게 작품이 시작되었고, 그 무대 등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해주세요.
무: <결구>는 무진의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몇 년 전까지 물류센터에서 일을 했었는데, 그곳의 구조나 시스템이 굉장히 기계적이고 사람들 사이에 사건 사고도 많아 그곳을 어떻게 영상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습니다. 그러다 20대 동료가 사고를 당해 컨베이어 벨트가 멈춘 사건이 있었고, 그때 관리자나 하청 업체, 그리고 현장의 동료들이 일 처리 하는 방식을 지켜보며 좀 이해되지 않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우연히 저희 아파트를 청소하신 분들의 휴게실을 방문하게 되었는데, 그때 문득 결구가 생각났습니다. 젊은 노동자인 제 입장에서 노년의 노동자들을 지켜보다 보니 끝이 안 나는 노동과 일을 할수록 피폐해지는 노년의 삶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하더군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더 열심히 일하라거나 악착같이 저축하라거나 하는 식으로 조언하는데, 퇴직 후에도 끊임없이 일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노인 분들을 보면 앞만 보고 열심히 산다는 것에 대해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영상에서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해석하기를 바라며 어떤 질문을 던졌을 뿐입니다. (이는 직접 영상을 통해 확인해 보시길….) 결구의 터널은 무진이 일했던 비좁은 컨베이어벨트 사이의 작업공간을(누군가 다치거나 피 흘리면 즉시 흔적을 지우고 어떻게든 컨베이어벨트를 다시 정상적으로 가동시켜야만 하는 공간), 마지막에 등장하는 지하는 청소부 아주머니들의 휴게실(아파트 주민 어느 누구도 들어가려 하지 않는 없는 공간과도 같은 곳) 입니다. 작업은 모두 저희 아파트 옥상과 지하에서 이뤄졌고, 지하실 공간은 저희가 어떠한 것도 가미하지 않은 곳입니다. 무언가 손을 대기도 애매한 상황에서 오히려 그 공간에 아주머니들이 분리수거장에서 주워다 놓으신 밥솥과 침대, 그리고 마른 장미꽃과 달력 등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영상에 등장하는 오브제들은 모두 그곳에 있는 그대로의 것들입니다. 터널도 제가 일하던 곳의 기계시스템 그대로를 담고 싶었지만 촬영이 불가능했고, 그래서 저희가 체험한 노동 현장의 이미지를 거친 질감의 드로잉을 뒤집어쓴 터널 형태의 공간으로 형상화했습니다. 여자가 터널 속에서 하는 일도 실은 컴퓨터와 각종 기계시스템 하에서 제가 하던 일을 비유한 것입니다. 쭈그리고 숙이고 걷기를 반복하다 잠깐 멈췄다 또 뭔가를 하는 현장에서의 무진의 신체를 표현한 거죠. 지금은 일을 쉬고 있지만 <결구>는 당시에 어떻게든 현장을 벗어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생계 문제 등으로) 그러지 못했던 무진의 고민들이 복합적으로 들어가 있던 작업입니다. 물론 사변적인 이야기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하는 여자의 정체성이라든가 구체적인 시간이나 장소성, 그리고 어떠한 노동인지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들을 지웠습니다. 그 결과 많은 분들이 <결구>를 보고 각자의 노동에 대해 얘기해 주시고, 끊임없이 타협하고 선택해야 하는 고단한 삶에 대한 부분까지 언급하시더군요. 그분들을 보며 언젠가 저희가 또 동시대인들의 노동을 둘러싼 어떤 이야기들로 또 다른 영상 작업을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 <오드라덱>은 각자 카프카의 단편소설을 읽고 시작된 작품으로 알고 있습니다. 카프카의 어떤 소설이 이슈가 되었는지요? 그리고 ‘오드라덱’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 오드라덱은 카프카의 「가장의 근심」에 등장하는 기이한 존재입니다. 평범한 가장의 불안을 불러일으키는 기이한 존재 오드라덱에 대한 묘사를 읽고 너무 궁금하더군요. 도대체 이게 뭐지? 이런 질문을 반복하다 셋이서 그 소설을 읽고 또 읽으며 거기에 등장하는 오드라덱을 최대한 비슷하게 재현해 보았습니다. 물론 오드라덱처럼 스스로 살아서 움직이는 존재가 아니라 저희가 그 기이한 동작이며 목소리를 흉내내야 했지만요. 오드라덱에 대한 묘사는 정말이지 카프카의 단편 「가장의 근심」을 읽어야만 알 수 있기에 일단 이 인터뷰에서 재현하거나 인용하는 건 피하겠습니다. 다만 저희는 오드라덱이 가장뿐 아니라 소위 자기 위치와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모든 자들을 불안하게 하는 요소라고 생각했는데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살고 있다 자부하는, 그래서 익명으로 어떤 명칭과 지위에 숨어도 들통나지 않을 것 같은 자들에게 어떤 미묘한 불안감을 불러일으킨다고 보았습니다. 사실 「가장의 근심」에서 주인공은 가장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가장보다는 오히려 그 정체를 알 수 없고 아무런 쓸모도 없는 그야말로 한없는 미지에 가까운 오드라덱이라는 것에 눈이 갑니다. 참 신기한 소설입니다. 가장은 굳이 자세히 묘사하지 않아도 그가 어떤 자이고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반면 정작 오드라덱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끝내 계속해서 질문을 불러일으키거든요. 소설 속에서 거대한 블랙홀 같은 걸 발견한 충격에 저희는 소설 속의 오드라덱을 직접 만들어 보았습니다. 물론 저희가 가장이 아니기에 당시엔 2, 30대의 푸릇한 젊은이들로써 우리가 느끼는 불안에 대해 고민했고, 그 결과 저희의 영상 <오드라덱>까지 만들게 된 것입니다. 사실 그 영상을 찍을 당시 추석명절이었고, 아버님 퇴직 후 부모님도 저희도 많이 불안했던 시기였습니다. 실제 오드라덱은 아니었지만 저희는 오드라덱을 만들며 오히려 저희가 느끼고 있던 두려움이나 불안감에 대해 좀 더 깊게 고민해 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 최신작 궤적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죠. 스크리닝에서 궤적 프로젝트 중 <궤적 – 좋은 세상> 과 <궤적 – 밤의 대화>를 상영 했는데요. 궤적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궁금하고, 시리즈로 가려고 한다는 이야기를 스크리닝 토크에서 해주셨어요. 연장선에서 좀 더 이야기를 부탁드립니다.
무: <궤적>은 한자로 함 궤(櫃)와 발자취 적(迹) 입니다. 원래 함이란 밀봉된 상자인데, 저희 집에 밀봉되지는 않지만 아무튼 집안 곳곳에 숨겨진 공간박스들이 참 많습니다. 가끔은 저희도 거기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죠. 그런데 어느 날 청소를 하다 박스에서 바스코 포파와 횔덜린의 아주 오래된 시집을 비롯해 저희들이 어릴 때 읽던 책들을 발견했습니다. 뭔가 작업이 잘 생각나지 않을 때였는데 그 책들을 읽는 동안 당시에 어지러웠던 정치상황이나 무심코 지나치며 봤던 새벽시장의 모습 등이 떠오르더라구요. 단순히 막혔던 작업의 아이디어를 얻는 정도를 넘어서 고전 텍스트를 읽는 내내 생각지도 못했던 질문거리와 당시의 시대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지에 대한 의문에 나름의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구석에 처박아 두었던 櫃로부터 어떤 迹을 찾은 거죠. 궤적은 그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고전 텍스트로 작업해 왔는데 앞으로는 그림과 음악, 사진 등 범위를 넓혀 작업할 생각입니다. 물론 고전의 범위 설정도 애매한 부분이 있고 기존의 텍스트를 현재의 작업과 어떻게 연결해서 작업하고 전시까지 이어갈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작업을 하며 찾아나가는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전에도 무진형제는 장자와 보르헤스의 글을 읽고 작업에 도움이 되는 부분을 발견하고 아직까지 실행하지 못한 작업들을 구상해 놓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작업들을 실행하지 못했던 건 텍스트를 슬쩍 보고 어느 한 부분만을 떼어서 작업화 하려던 저희의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궤적>은 이를 깨고 고전텍스트를 통해 생각지도 못한 것들을 발견하고 그 과정에서 저희의 고정관념이나 무지를 좀 깨보고자 시도한 작업입니다. 저희에게는 그야말로 낯설고 외부적인 어떤 힘으로 작용하길 바라고 있습니다. 물론 텍스트의 재현은 절대 아니고, 거기서 얻게 된 질문이나 저희 작업과 연결되는 지점, 생각지도 못했던 개념들, 때론 고전의 구성방식 자체의 신선함을 발견할 때, 이를 어떻게 저희 작업으로 만들 수 있을지를 고민합니다. 오랫동안 사진 이미지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다 바스코 포파의 시를 읽고 문득 세상을 이러이러하게 보면 참 재밌겠다는 생각에 그 시에 등장하는 방식대로 촬영한 작업이 <새벽시장>이었던 것처럼요. 저희끼리는 한 3년은 더 해봐야 <궤적>에 대해 좀 더 분명하게 작업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급하게 궤적이 뭐다라고 말씀드리기보다 일단은 궤적을 어떤 방식으로 하고 있다는 것, 저희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부터 말씀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분명한 건 궤적을 하며 저희가 텍스트를 약삭빠르게 이용하는 것보다 일단 실패하더라도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고 거기에 대해 서로 장시간 얘기하면서 작업에 대해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하게 되었다는 겁니다. 저희가 처음에 팀을 꾸리며 여러 방식으로 함께 공통의 텍스트를 읽고 영화를 보고 이렇게 공통으로 경험한 것들을 바탕으로 어떻게 작업할지에 대한 고민들을 참 많이 했었는데요. 궤적을 하며 비로소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하고 싶어도 저희 힘으로 다 표현하지 못하는 텍스트들이 있죠. 무엇보다 기존의 고전들과 저희 작업이 어떻게 맞닿아 있고 이를 저희가 어떻게 강독하고 그 결과를 어떻게 담아냈는지에 대한 것까지 어떻게 저희가 작업과 함께 제시할 수 있는지를 고민 중입니다. 얼마 전 일민미술관에서 네번째 궤적 작업인 <목하, 세계진문(目下, 世界珍門)>을 전하며 앞으로 궤적을 어떤 식으로 작업하고 만들어야 할지 좀 감이 왔습니다. 물론 일민에서의 전시는 「해저2만리」 라는 구체적인 텍스트를 중심으로 많은 작가 분들이 이를 해석하는 전시였는데요. 그래서 오히려 저희는 하나의 텍스트를 읽고 이를 어떻게 해석해서 작업화 해야 할지에 대한 그야말로 궤적 작업과 연관해서 정말 깊이 있게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원 텍스트를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서 이를 어떻게 우리 작업으로 끌고 올 수 있을지 정말 많은 가능성을 알게 해준 전시였습니다. 그밖에 저희가 궤적에 대해서 감응하고 고민하는 지점은 차차 작업과 전시를 통해 풀어가야 할 것 같은데요, 일민 전시를 통해서 궤적을 계속 해도 되겠다는 어떤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앞으로 저희가 궤적 작업을 약 30편 정도 만들기로 했거든요. 작업을 계속하면서 고전작품을 어떻게 저희 작업과 연결할 것인지 더 많은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정: 스크리닝 순서로 마지막이였던 <비화>는 추상적인 이미지에 정영돈 작가의 내레이션이 돋보였던 작품이었어요. 특히나 이미지가 주는 힘보다는 발화행위를 통해 들려지는 스토리에 더 집중하게 되더라구요. 스크리닝 후 토크 때 이 작품이 무진형제가 근본적으로 추구하는 작품세계를 담고 있다고 하셨는데 어떠한 지점들인지 이야기해주세요.
무: 이야기와 이미지의 실험이라는 측면에서 무진형제가 추구하는 작품세계라고 얘기했던 것 같습니다. 보통 무진형제가 경험하는 또는 새롭게 발견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영상 안에서 전달할지를 고민합니다. 그 후 영상으로 제작하며 설치의 과정을 통해 영상만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닌 설치의 과정을 통해 영상을 읽는 스펙트럼을 넓히는 것에 관심이 있습니다. <비화>작업은 그러한 시도를 조금 더 확장해서 했던 작업이고 앞으로의 영상을 전달하는 부분에 있어 그러한 설치의 방식을 많이 고려하게 될 것 같습니다. 비화의 이야기를 조금 더 하자면 비화의 주인공은 구렁이 아이 ‘구아’ 입니다. 그러나 영상에서 ‘구아’는 등장하지 않죠. 대신 ‘구아’의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건축자재들, 철골구조물들의 상승하는 이미지가 계속해서 등장합니다. 그 이미지들과 내레이션을 통해서 ‘구아’에 관한 이야기들을 상상하도록 유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시장에서의 이야기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즉 사운드, 조명, 영상 스크린의 크기, 그 외의 설치물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비화를 찍을 당시 저희 집 주변 전체가 공사장이었습니다. 산이 허물어지고 오래된 집이 부숴진 뒤 그 자리에서 어느 날 갑자기 고급주택과 고층 아파트, 그리고 마트가 들어서더군요. 그런 과정에서 기존 거주민들이나 그들이 살던 마을을 떠돌던 이야기 같은 것들은 모두 사라지고 오직 그곳이 평당 얼마나 하는지만 남았습니다. 모든 게 허물어지고 난 뒤의 땅이 가격에 따라 구획되고 새로 생긴 아파트 또한 오직 그것으로만 이야기 되었죠. 사실 저희는 그 동네에서 어떤 사건이 있었고, 가령 치정에 의해 레스토랑 주인이 자기 가게에 홧김에 불을 낸 사건이라든가 거기에 살던 괴팍한 성격의 치과의사에 관한 이야기 등을 알고 있었거든요. 사실 <더미>가 마을이 허물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만든 영상이라면 <비화>는 그 뒤에 무언가가 새로 지어졌을 때 만들어졌습니다. 마법처럼 순식간에 모든 게 사라진 땅 위에 거주지의 금액만 적힌 현수막들이 펄럭이는 게 좀 묘하기도 하고 어떻게 그런 것들만 남았는지 의아해 하는 가운데 만들어진 거죠. 땅에는 수많은 가치가 있을 텐데 어떻게 가격만 남은 건지… 그런 문제의식 속에서 저희가 어릴 때부터 들어온 땅에 대한 이야기, 특히 구렁이 아이와 증조할머님께서 직접 겪으신 일화 등을 엮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죠. 땅에 대해서도 사람에 대해서도 하나의 프레임 혹은 가치로만 재단하고 판단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라고 할까요. 무진형제 작업은 전반적으로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적막의 시대>와 <결구>도 결국 인간에게 들이대는 단 하나의 잣대에 대한 의구심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모든 게 화폐가치로 환산되는 게 당연시 되는 사회에서 사실 아무 힘도 없는 저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저 획일적인 가치 속에서 사라져 가는 것들을 붙들고 그것들을 어떻게 새롭게 예술작업화 할 수 있을지, 저희 나름의 방식으로 지금 이곳에서 그러한 이미지와 이야기들이 새롭게 작동할 수 있게 작업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정: <풍경>에서는 드로잉, 스톱모션 같은 애니메이션 기법들이 총제적으로 표현되었어요. 작업이 꽤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 왜 이런 과정들이 작품에 포함되어야 했는지 이유가 궁금해요. 형식적 실험이었던 거 같기도 하지만요.
무: 풍경은 젊은 청년들의 현실적 이야기와 신화가 혼합된 작업입니다. 무엇보다 젊은 세대에 속하는 저희가 체감하는 시간성과 그 시간을 뛰어넘는 역사, 신화의 시간을 담은 작업이죠. 그러한 이야기성과 시간성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스톱모션 기법을 택하게 되었습니다. 오래 전부터 스톱모션에 관심이 있었는데, 과정 자체가 엄두가 안 나더라구요. 그런데 <풍경>을 구상하면서 우리가 그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시도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참에 다 해보자는 생각에서 애니메이션에서 스톱모션까지 시도해 보았습니다. 어떻게 보면 디지털로 표현할 수도 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가 구상한 것들을 원하는 만큼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저희는 좀 거칠고 다양한 텍스처의 느낌을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드로잉과 애니메이션도 직접 손으로 다 했죠. 사실 저희가 스톱모션을 보기만 했지 제작에 대해서는 잘 몰라서 세트며 인형 크기를 거의 실제크기에 가깝게 제작했습니다. 세트만 3m가 넘어요.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곳에서 스모그 효과까지 내기 위해 문도 다 닫아걸고 한달 넘는 시간 동안 대형 세트장 안에 갇힌 채 인형을 하나하나 옮기고 찍기를 반복했죠. 처음에는 형식적인 실험으로 시작했지만, 하다 보니 거의 수행에 가까운 작업이었습니다. 세트와 인형들을 직접 움직이고 이를 몇 만장의 사진으로 찍어 나중에 편집까지… 과정 자체가 고행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그냥 영상으로 찍으며 작업할 때와는 또 다른 시간성이 느껴졌습니다. 1초의 동작을 위해 24장의 사진을 찍잖아요. 처음에는 아무리 해도 작업에 진전이 없어 답답하고, 또 저희 세대가 뭐든 빨리빨리 진행되고 결과물을 내야 하는 디지털 세대다 보니 그 과정 자체를 못 견디게 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기다림, 답답함, 정적, 그 와중에 몸은 또 왜 그렇게 바삐 움직여야 하는지…. 아무튼 이런 게 참 힘들더군요. 그래도 어찌어찌 꾹 참고 하다 보니 어느새 뭔가 만들어지고 찍어둔 것들이 하나의 영상으로 흘러가는 게 한참 뒤에야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막연하게 하고 싶고 필요한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작업 과정에서 유독 많은 걸 알려주는 게 바로 스톱모션인 것 같아요. 인물의 동작에서부터 영상의 시간성, 시간의 변화를 통해 얻어지는 것들, 저희의 신체적인 특징이 어떻게 작업에 반영되는지… 그때 정말 많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도 단순히 사진을 반복적으로 찍는 것뿐만 아니라 그것들이 어떻게 영상으로 이어지는지, 그리고 사진과 영상의 차이 등에서도 많은 생각을 했었죠. 사실 작년에 했던 <새벽시장>과 올초에 일민에서 전시했던 <목하, 세계진문>처럼 사진 이미지와 텍스트를 조합해서 슬라이드로 상영하는 작업을 <풍경> 때부터 구상했었습니다. 빠르게 지나가는 지금 이 시대의 것들을 흑백사진이라는 좀 느리고 정지된 듯한 매체로 포착해 보자는 거였죠. 이 작업들은 <풍경>을 작업하며 사진이 갖고 있는 이미지의 특성, 그 정지된 이미지를 찬찬히 지켜보고 그것들을 잇고 모으고 조합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새로운 이미지 실험을 떠올리게 했거든요. 그래서 일부러 물자가 빠르게 이동되는 시장이라든가 최첨단 건축기술의 집합체인 롯데타워 등에서 작업했습니다. 아무튼 풍경을 기점으로 저희 작업에서도 많은 변화가 있었고, 여러 실험도 계획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정: 무진형제의 공통된 요즈음 관심사는 무엇인가요?
무: 저희는 공식적인 소개 글에도 항상 기입하는 게 있는 게 바로 주변인들에 대한 관심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저희 집 주변에서 만나는 분들에 대한 관심이 대부분이었다면 요즘은 먼 나라에 살면서도 저희에게 끊임없이 어떤 호기심과 자극을 주는 분들로 관심이 확장된 것 같습니다. 사실 저희는 겉보기에 독특해 보이거나 심지어 저희에게 시비를 거는 분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주변인들에 관해 얘기를 많이 나누는 편입니다. 저희를 불쾌하게 하거나 이상한 분들에 대해서 분석하고 나름 여러 방향으로 논의를 하며 그의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하죠. 이게 저희가 외부에서 겪는 갈등과 긴장을 저희 내부에서 작업을 통해 해결하는 방식이기도 하구요. 가령 어떤 분은 저희 앞에서 노골적으로 자신을 과대 포장하다 갑자기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불행하다며 자신보다 나아 보이는 주변인을 마구 헐뜯더니, 급기야 멀쩡한 자신을 거지취급하며 자학하더군요. 처음엔 당황스러웠지만 저희는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제스처를 취했는지 등을 얘기하며 이를 어떻게 저희 나름대로 스케치해 둘 것인지에 대해 고민했습니다. 결국 온갖 사람들을 탐구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저희의 시도는 세상을 이해하고자 하는 몸부림이기도 합니다. 작업을 시작할 때부터 저희는 늘 동시대인들에 대해 관심을 두고 그들이 전하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야기할지에 대해 고민해 왔습니다. 지금까지의 작업은 물론 <태각>과 앞으로 하게 될 작업도 그러한 관심사의 연장선상이라고 볼 수 있죠. 주변에 좀 이상해 보이고 괜히 시비 걸고 귀찮게 하고 하는 사람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결국 어떤 메시지를 전하더라구요. 심지어 그것이 온전히 ‘나 병들었어’, ‘나 아파’라고 해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병들고 아픈지, 저희는 그렇게 계속해서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런 것들을 쭉 고민하고 질문을 던지고 파고 들어가는 편입니다. 가령 <태각>이란 작업도 저희가 처음에는 어르신들 본인의 태몽을 묻고 그걸 바탕으로 해서 작업을 했었는데, 처음에는 그렇게 경계하고 욕하시던 어르신들이 어느 순간 저희와 너무도 얘기를 하고 싶어하시는 거예요. 태몽을 매개로 얘기를 하다 보면 눈물 콧물 다 쏟으시면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 고통 이런 것들을 막 털어놓으시면서 또 나름대로 결론도 내리시구요. 저희는 요즘 하고 있는 작업들이 그야말로 사람들 속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다 보니 그러한 관계와 만남 속에서 듣는 이야기에 도취되고 그걸 바탕으로 어떻게 작업해 나갈지에 대해서만 생각 중입니다. 앞으로 하게 될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작업도 그렇거든요. 작업 중이어서 자세히 말씀을 못 드리겠지만, 겉보기에는 너무도 이상하고 기이한 행동을 하는 소년이 어느 날 툭 던진 말 한마디에서 작업이 시작됐는데요. 그 소년의 말을 통해 저희가 갖고 있던 고정관념이나 편견 같은 것들이 드러나더라구요. 뭐 이런 식으로 저희는 계속해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작업하고 그럴 것 같습니다. 꼭 이야기를 듣는 데서만 작업하는 건 아니지만 최근 하고 있는 작업들이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정: 세 분 각각의 작품 활동도 하고 계신데요. 팀으로 작업을 하는 것과 개인활동에서 하고자 방향이 조금은 다를거라 예상되는데요. 어떠세요? 그리고 앞으로의 개인 활동에 대한 계획도 소개해 주세요.
정효영: 무진형제 활동 초반에는 다르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개인작업과 무진형제의 작업은 다르지 않다고 생각되는 지점이 오더라고요. 개인작업을 통해 개인의 기억과 서사에 집중을 했다면 무진형제의 작업은 좀더 보편적인 사회의 구성원들의 이야기로 확장됩니다. 사실 개인적인 이야기를 다루는 저의 작업들도 결국은 사회구성원으로서 내뱉는 이야기잖아요. 전에는 그야말로 저의 위치와 시각으로 작업해왔었거든요. 그런데 무진형제 작업을 하면서 점점 발화하는 위치가 변해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기존 개인작업들이 서사성 보다는 조형적인 이미지에 치중되어있었거든요. 무진형제의 작업은 작업 안에서의 이야기 구조, 그 안에서의 상징적인 서사성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 서사의 구조 안에서 조형이 맞물렸을 때 조형의 상징은 더 커지게 됩니다. 무진형제의 작업을 하면서 그러한 부분들이 흥미로웠습니다. 당분간은 무진형제 작업에 집중을 하며 영상 안에서의 구조와 텍스처들을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할 것 같습니다.
정영돈: 개인작업의 가장 큰 특징은 작업 과정에서 매번 주어지는 선택지에서 선택의 기준이 저 자신에게 있다는 것이겠지요. 때문에 확신이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작업은 속도가 붙습니다. 반면 무진형제의 작업은 하나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 서로가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사소한 것이라도 서로가 동의하지 않으면 다음 단계로 나아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덕분에 각자가 놓치는 부분들을 서로가 보완 한다고 할까요.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무진형제의 작업이 언제나 서로를 보완하거나 긍정적으로만 나아간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룹 안에서 갖는 마찰이나 불미스러운 상황들로 인해 건강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면 결국 이는 작품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작업의 형식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그룹으로 작업을 하거나 개인으로 작업을 하는 시작점들이 처음에는 다르게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각각의 매체나 형식이 갖는 차이는 있겠으나, 이는 시간이 지나며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되고 오히려 다른 매체나 형식을 이해하는 훈련이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 보니 그룹으로 하는 작업이 자연스럽게 개인작업처럼 느껴지게 됩니다. 결국 매체나 형식의 차이는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유사하다고 생각되어지는 테두리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정: 올해 무진형제의 개인전이 있는 것으로 압니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소식을 소개해주세요.
무: 우선 9월에 ‘경기천년 도큐페스타’를 비롯해 여러 단체전에 참여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10월 중순에 파주의 교하도서관에서 태각보고전이 있습니다. 파주에서 진행된 태각시리즈는 워크숍과정을 통해 어르신들에게 본인의 태몽을 여쭤본 후 태몽 안에 등장했던 과일, 동물 등의 상징적인 이미지들을 그려주시면 태몽 도장을 만들어 드리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태몽이야기를 통해 어르신들의 삶의 이야기들을 채집하고 태몽도장들과 함께 책을 만들어 전시할 예정입니다. 그리고 11월 초에 백남준 아트센터에서의 신진작가기획전에 참여예정입니다. 12월초에 무진형제 궤적시리즈의 신작과 기존 궤적작업들만 모아서 2회 개인전을 준비중에 있습니다. 소식은 이 정도고 계획은 당분간 전시를 위해서 계속 작업하고 준비하는 것밖에 없는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