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2015년 5월 16일 오후 5시
장소: 무진형제 작업실
참여자: 이슬비(월간미술 기자, 이하 이), 정무진(이하 무), 정효영(이하 효), 정영돈(이하 돈)
이: 무진형제는 친남매로 구성된 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인데요. 문학을 전공한 정무진 작가님과 미술 전공한 정효영 작가님, 사진 전공한 정영돈 작가님이 영상이라는 매체를 통해 작업을 하는데, 사실 세 분 다 영상을 전공하지는 않았지요. 때문에 영상이라는 매체는 새롭게 도전하는 영역인 것 같아요. 무진형제에게 영상이라는 언어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 소개해주셨으면 합니다.
돈: 저희 각자에게 주어진 역할이 하나로 뭉쳤을 때 자연스럽게 영상작업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저희 작업을 잠깐 말씀을 드리면 2004년도에 <기다리지 않아도 너는 온다> 이게 첫 작업이었죠. 이 작업을 시작으로 그때 정효영 작가가 같이 한 번 해보자 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었죠. 시나리오 같은 준비 과정들이 셋 다 준비되어 있는 그런 작업은 아니었고요. 정효영 작가가 배우를 하고, 그때는 제가 엑스트라로 보조출연을 했었고, 정무진 작가가 카메라를 들었어요. 우리가 각자 공부한 전공, 우리가 각자 할 수 있는 것을 함께 보여주는 것이었지요.
무: 저희 셋 특성상 만약에 누구 하나가 진두지휘해서 영상을 전공한 사람이 끌고 갔으면 아마 셋 다 못했을 거예요. 근데 저희 셋 다 영상에 무지했기 때문에 함께 배우고, 찍고, 싸우면서 오히려 영상 작업을 하기에 더 수월 했던 것 같아요.
이: 요즘에는 미술 하시는 분들도 다양한 타 장르와의 협업을 통해서 작품 활동을 하는 경우가 많고 또 그 자체가 하나의 트렌드를 형성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고요. 근데 무진형제 같은 경우에는, 사실 모두에게 낯선 경험이긴 하지만, 영상이라는 것을 세 분이 직접 공부하고 자기화하시면서 작업을 하잖아요. 배우도, 무대장치도, 시나리오도 모두 직접 하시니까요. 세 분이 함께 작업을 해야 되는, 그러니까 남의 도움보다는 세 명이서 같이 완성해야한다는 어떤 철칙이 따로 있는 건가요?
돈: 저희는 '우리들이 손수 만들어내는 것들을 직접 보여줘야 돼'라는 그런 생각을 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저희도 영상을 보여주는 어떤 범위, 이를테면 표현 범위라든지, 예산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넓어지게 된다면 협업을 같이 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저희가 운이 좀 좋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을 하고 있어요. 각자 나눠진 부분이 하나의 영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 각각 들어맞는 그런 지점을 담당을 하고 있거든요. 만약에 제가 혼자 했으면 배우도 고용을 했어야 됐을 거고, 사운드 그리고 영상 촬영기사 이런 분들을 함께 고용해서 협업을 하면서 영상작업을 만들었겠죠. 저희가 작년과 같은 경우 <M의 장> 프로젝트를 했을 때에는 우리끼리 하기에는 조금 역부족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 정도까지 작가가 할 수 있을까를 생각했을 때 저희끼리 끌고 가기에는 힘이 부칠 것 같다는 판단이 들어서 많은 분들의 도움을 받아 협업을 했었죠. 그런데 영상작업은 저희의 주변 환경이 미리 자리 잡혀 있었기 때문에, 바로 집 옥탑방에 올라가서 저는 카메라를 들고, 큰 누나(정무진)가 쓴 시나리오를 보면서, 작은 누나(정효영)는 의상을 입고 촬영을 바로 들어가면 되었거든요. 이렇게 좀 쉽게 구성을 잡고 추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무: 아마도 다음 작업부터는 주변사람들을 시작으로 해서 또 다른 공간에서 함께 작업을 하는 방식으로 하게 될 것 같아요. 일단 저희의 작업 스타일이 천천히 부딪혀가면서 하는 스타일이라서 나중에는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여건이 되는대로 가족이나 친지 분들도 출연하는 식으로 조금씩 점차 넓혀갈 것 같아요.
이: 2004년 첫 작업을 했고 이후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한 것이 2011년인데 약 5년간 본격적으로 작업을 함께 하시면서 우여곡절도 많았을 것 같아요. 함께 협업 한다는 것에 대해 각자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무진형제라는 그룹으로도 활동하시지만, 또 각자 자신들의 작업을 병행하고 있으니까요.
효: 처음 시작했을 때에는 문학을 전공해서 언어로 이야기를 하는 언니하고는 소통에 차이가 꽤 많았어요. 저랑 영돈이는 시각적인 이미지로 많은 작업을 하기 때문에요. 그래서 서로 설득해 나가고 차이를 좁히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영상에 드러나는 언어와 이미지의 조합이 또 그 사이를 여전히 풀어 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고요. 저희가 싸우는 시점과 함께 풀어 나가면서 의견이 좁혀져 나가면 어느 한 순간 뻥하고 뚫리면서 의견이 모아지는 순간이 있기도 하고요.
무: 기자님께서 질문지를 주셨을 때 '떨림'이라는 단어를 적어주셨는데, 그런 게 확실히 좀 있긴 있어요. 왜냐면 예전에 저는 여러 동아리 활동도 했었고, 문학 전공이지만 영화 쪽에 더 많이 기웃거린 편이라서 다른 사람들과도 함께 작업을 하곤 했거든요. 제가 뭔가 얘기를 하면, 아하면 어하고 이렇게 알아듣지를 못하는 경우가 더 많더라고요. 그런데 동생들하고 얘기를 할 때 보면 제가 뭔가 막연하게 얘기를 던져도 어느 순간 서로 필이 온다고 해야 되나요. 이게 통할 때가 있어요. 구체화되고 이런 과정들에서 작업할 때 느끼는 그런 떨림이라든가 희열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있어요.
이: 본격적으로 작업 이야기를 하자면요. 무진형제 작업에서 특징을 꼽자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와 은유적이고 상징적인 요소가 상당히 두드러진다고 생각이 들어요. 특히 마치 우주에서 불시착한 것 같은 주인공이 등장해서 어떤 행동을 하는지 그것을 주목하는 게 작업에서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주 낯선 주인공이나 환경이 대단히 은유적인 부분을 포함하고 있어서 현실과 완전 동떨어졌다고 볼 수는 없을 텐데요. 무진형제의 현실 인식 자체가 좀 독특한 지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효: 저희가 바라보는 현실에 대한 낯선 이미지를 포착을 해서 새롭게 만든 어떤 캐릭터나 아니면 설정을 세팅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들이 많이 나타나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구>에서 드러났던 쪽방의 이미지 그곳을 제외하고는 전부 저희가 만들어낸 가상의 이미지와 가상의 캐릭터들이었어요. 특히나 저희는 비유적으로 표현을 하거나, 조금은 시적인 어떤 이미지로서 던져주는 영상들이 대부분이에요. 저희가 바라보는 현실에 대해서 재탄생되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래서 현실 인식에 대해 낯선 부분들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 같고요. 특히 <오드라덱>이나 <알다 너를>은 등장하는 가상의 캐릭터들에 어떤 생명력을 부여하는 것처럼 저희가 움직임을 주는 영상들이 대부분이었어요. 그래서 분명 만들어진 이미지인데 이것들이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고 있으니까 현실과는 약간 동떨어진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키네틱이나 그런 느낌은 아니고, 영상 안에서의 움직임이 그렇게 잡히기 때문에 그로테스크하고 약간은 낯선 느낌들이 많이 반영이 되는 것 같아요.
이: 그 자체가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지점이 좀 흥미로운 부분인 것 같은데요.
무: 현실을 바라볼 때 저희가 서있는 위치라든지,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지점이 주목을 많이 하고 그것을 어떻게 다시 보여줄까에 생각을 많이 해요. 그러다 보니 저희가 표현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보여주게 되는 것이고요. 저희 감각으로 느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서 가상의 인물, 가상의 어떤 공간 등을 보여주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작가님들의 작업에서는 노동집약적인 요소가 상당히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것 같은데요. 무대 장치나 소품에서도 그렇지만 <적막의 시대>에서는 주인공이 끊임없이 바느질하는 행위를 하는데, 이 행위 자체가 마치 숨 쉬고 밥을 먹듯 삶의 일부로서 끊임없이 노동하고 있는 것 같아 보여요. 그렇다고 해서 노동에 대한 강조를 하시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사실 근대 이후에 노동이 개념 자체가 변질된 경우가 많잖아요. 노동의 개념 자체를 다시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고요. 오늘날에는 노동 자체가 생존의 수단으로서 전락한 부분이 없지 않고, 그런 자발적인 노동과 생존하기 위해 해야 되는 그런 노동. 그런 부분도 중요한 부분일 텐데 작가님들에게 노동이라는 개념 자체는 어떤 식의 의미를 가지는지, 말하고 싶으신 노동에 대한 개념 자체가 어떤 건지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무: 네. 저나 효영이는 주로 다른 노동 현장에 가서 일을 했어요. 저 같은 경우 한 1년 전까지 오전에는 공장에서 공장 시스템에 맞춰 일을 했고, 오후에는 제 작업을 하고 이런 식으로 살아왔었죠. 오전에 일하는 동안에 제 몸은 그 기계 시스템에 완전히 맞춰지잖아요. 정말 아무 생각 없이 계속해서 그 기계에 맞춰서 일만 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적막의 시대>를 찍을 때, 오전에는 그런 일을 하는 게 너무 힘든데, 오후에는 밤을 새서 뭘 해도 그다지 힘들지 않아서 이 차이가 뭘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단순히 오전에 일을 하면 그냥 돈을 벌겠거니 하는 생각으로 일을 하고 그랬는데 '그게 내 삶에 있어서 뭘까' 하는 생각을 계속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서 노동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사실 제가 노동에 대해서 잘 몰라요. 개념도 너무 복잡하고요. 그런데 제가 '노동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나 혹은 그 밑바탕에 있는 게 뭘까'라는 생각을 해봤더니 삶에 대한 엄청난 불안이 있더라고요.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지점을 순차적으로 본다면 <결구>가 사실 먼저일 것 같아요. 그런데 <적막의 시대>를 어둡게 보시는 경우가 많은데, 실은 그게 더 '내 작업이 이거고, 내 일이 이거라는 식'의, 그러니까 살아가는 걸 좀 더 강조 한다고 해야 하나요. 삶의 근원 자체가 좀 다른 것 같아요. 내가 내 몸을 쓰게 하거나, 내 마음을 가게 하거나 이 근원 자체가 좀 다른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적막의 시대>는 좀 더 자발적이고 앞으로 계속 그렇게 밥 먹고 살아가듯이 하는 일이라면, <결구>의 경우는 부차적인 게 아닌가 싶네요.
효: <적막의 시대>와 <결구>, 그리고 또 저희가 구상해 놓은 신작이 있는데 이 세 작업을 저희 나름대로 노동 시리즈라고 보고 있어요. 그런데 노동의 의미를 한정 짓지 않고,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노동에 대한 여러 정신적이고 육체적인 모든 것들을 다 담아서 표현해내는 노동 시리즈로 구상을 하고 있죠.
이: <M의 장>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은데요. 원통형의 거대한 구조물이 어떤 일상의 공간 자체에 설치되잖아요. 파주 일대의 공원이라든지, 아니면 초등학교 운동장이라든지, 철거 전의 미군 부대나 임진강 평화누리공원과 같은 구체적인 장소에요. 사실 기존의 작가님의 작업과는 다른 맥락인 것 같아요. 공공장소에서 사람들의 참여를 유도하기 때문에 일종의 공공미술이라고도 볼 수 있을 텐데요. 그 동안의 무진형제의 작업은 상당히 초현실적으로 보이는 세트장과 같은 공간 내에서 이루어진 이야기라서 외부와 직접적인 교류하는 시도는 이 작업이 처음이라 보여요. 그런 의미에서 터닝 포인트가 되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어떻게 이 작업을 처음 시작하게 되셨는지도 궁금하고요. 이 작업이 그 이후 작업에 어떤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을 하시는지도 이야기 부탁드려요.
효: <M의 장> 때에는 저희가 영상을 만들 때 직접 시나리오를 쓰고, 무대 설치를 하고, 촬영을 하는 그런 접근 방식에 의문을 가지고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어요. 그러면서 직접적인 교류를 통해서 우리가 우리의 이야기를 끄집어내지 말고, 반대로 다른 분들이 주신 다양한 이야기들에서부터 다시 되돌리는 작업을 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해서 외부와 직접적인 교류를 위한 시도의 측면도 있었고요. 그리고 또 공공미술 안에 영상이 접목이 되었을 때 우리가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에 대한 생각도 했어요. 파주에 있는 네 곳의 다른 장소에서 같은 원통형의 구조물을 전시 하면서 저희가 보다 다층적인 과정을 좀 거친 것 같아요. 그래서 영상들이 상당히 재미있게 나왔던 것 같고요. 그리고 외부 벽면에 그 안에서 본 것을 적어놓은 이야기들은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저희들이 정말 예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이야기들을 채집하면서 '이런 생각을 하면서 사시는구나' 하고 깨달았고, 그것들을 가지고 알게 모르게 그 다음 작 <결구>에 영향을 줬던 것 같아요. 저희는 삶 자체를 원통형 안에서 채집을 했다고 생각해요. 삶의 다양한 이야기들을 날 것으로 채집하는 과정은 저희에게 상당히 중요한 지점이었던 것 같아요. 한편 <M의 장>은 육체적으로도 힘든 프로젝트였어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다 끝나고 나니 근육이 붙은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저희들끼리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 그런 부분들도 좋았고. 앞으로 영상을 하면서 저희가 담아내야 하는 지점들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고도 볼 수 있고요. 솔직히 노동시리즈 같은 경우도 <M의 장>에서 그런 힌트를 얻었다고 볼 수 있겠어요. 그런 부분들이 굉장히 좋았었기 때문에 기회가 닿는 한 공공미술은 계속 할 생각이에요. 약 2년에 한 번씩 그렇게 진행하고, 그에 대한 피드백으로 저희는 영상을 또 만들고 그런 식으로 단계를 거쳐 나갈 생각이에요.
돈: <M의 장>을 하면서 경험의 폭이 많이 넓어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운정건강공원에서는 반응이 꽤 괜찮았어요. 왜냐하면 저녁에 저녁 식사 하시고 운동하러 오시는 아주머니, 아저씨 분들이 많았거든요. 하나 기억에 남는 건, 어떤 아저씨가 한 분 오셨었어요. 낮에도, 저녁에도, 밤에는 술을 드시고 오시기도 하고, 이렇게 자주 얼굴을 마주치다 보니 자연스럽게 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죠. 그 분의 첫 반응은 "너무 낯설다" 였어요. 작업에 설치된 스파이 미러는 한 방향에서 거울을 뚫고 볼 수 있는 구조이고, 다른 쪽에서는 반사되는 거울이에요. 그래서 자기 모습을 보면 너무 낯설 수 있는 거죠. 저희는 거울과 미디어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를 생각했거든요. 또 저희가 <M의 장> 안의 조명을 아래에서 위로 비추도록 설치했어요. 보통 조명을 위에서 아래로 떨어뜨리잖아요. 스파이 미러 때문에 낯설기도 하겠지만 아마도 저희가 설정한 조명 때문에 낯선 부분도 있었을 거에요. 또 그 분이 쓴 글들을 살펴보니 '내가 왜 이렇게 계속해서 살아가고 있는 걸까' 이런 글귀가 있더라고요. 저는 그 말이 너무 와 닿았어요.
무: 어른들은 매우 불안해하는 반면,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정말 희한한 것들을 생각을 해냈어요. 아이들이 쓴 글이나 그림을 그리는 것만 봐도요. 본인이 빛의 강아지처럼 보고 있다고 '빛의 강아지'라고 표현한 글도 있었는데, 그런 세대적인 차이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 같았어요.
이: 이제 아르코 미디어 프로젝트에 출품된 <결구>라는 작품에 초점을 맞추고 싶은데요. 이 작품에서는 좁은 터널에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주인공이 등장하는데, 사실 어떤 불만도 없고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을 대단히 충실하게 수행하는 인물로 보여요. 그리고 붉은 심장은 기존의 시스템을 교란시키는 그런 역할을 하는 상징물 같아 보이고요. 주인공이 이 붉은 심장을 가방에 넣고 흔적을 말끔하게 제거하고 보수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철저하게 기록물로 남기고 보고서로 쓰는 장면이 나오는데요. 그러다가 갑자기 주인공이 전혀 새로운 장소로 이동하게 되고 지하실 한편에 있는 쪽방에 다다르게 되는데, 사실 그 쪽방에 살고 있는 주인은 보이지 않지만 다양한 일상들이 하나의 상징물처럼 보이면서 이 방에 살고 있었던 누군가를 떠올리게 만들더라고요. 저는 이 영상을 보면서 혹시 이 방의 주인이 어쩌면 시스템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목숨을 잃은 붉은 심장의 주인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터널을 보수하는 그 주인공과 쪽방의 주인 같은 경우에는 정말 다른 삶을 살았던 인물처럼 보이고요. 하지만 결국에는 이 세상에 함께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인데요. 작가님들이 이 작품에서 어떤 시스템에 적응하는 인물, 그리고 쪽방의 주인, 이 두 인물들을 통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무: 두 인물을 어떻게 봐도 무방합니다. 어떻게든 해석이 될 수 있고 또 여지를 남겨 놓은 것도 있거든요. 저희가 처음엔 주인공을 젊은 나이에 시스템에 잘 적응해 한가는 현재의 노동자로 설정을 했어요. 그리고 그 주인공이 가상의 공간에 떨어져서 마주하는 쪽방의 공간은 실제로 아파트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기거하시는 방에서 모티프를 얻었고요. 저희가 한창 일에 시달렸을 때 청소부 아주머니들 방이나 경비원 분들이 지내시는 경비실에 은근히 관심이 많았어요. 심장의 주인공은 동생들은 다르게 생각할진 모르겠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전임자의 심장이 아닐까라는 생각이에요. 모든 육체를 마모시키고 결국에는 그거 하나만 남기고 죽은 사람이고, 그 찌꺼기를 주인공이 처리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실제로 일터에 가보면 전에 일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관두고 간 후에 그 흔적들이 있어요. 기계 시스템에 사람의 흔적이 다소 남아있는데 그게 굉장히 애달프게 다가올 때가 있거든요. 하지만, 동생들과는 어느 정도 다르게 생각하는 지점도 있어서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자고 생각을 했고요. 누구라도 어떤 식으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도록 그렇게 제작했어요.
효: 붉은 심장은 저에게 주인공의 심장일 수도 있고, 어떤 누군가의 심장일 있고 그래요. 저는 그 부분에 대해서는 설정 자체를 갖지 말자고 생각했어요. <결구>의 방도 말씀해주신 것처럼 주인공의 방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어요. 아래의 어두운 장소로 떨어졌을 때 저희가 초점을 맞추고자 했던 것은 내가 지켜왔던 시스템이나 룰에서 한 순간 비켜나갔을 때, 그러니까 상황이 올 스톱되었을 때에 어떤 생각을 마주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싶었던 거예요. 이를테면 우리가 갑자기 크고 작은 일을 겪게 되는 그 찰나의 순간에 하게 되는 어떤 판단이나 생각들을 보여주고자 그런 상황을 설정해보았던 거죠.
이: 지하실처럼 보이는 공간에 등장하는 사물들은 일상적인 사물들이지만, 작품이 가지고 있는 비현실적이면서도 몽환적인 분위기상 작품 속 사물이 가지고 있는 의미도 있을 것 같아요. 일상적인 '용품'만이 아니라 독특한 어떤 '상품성'을 지니고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요?
효: 저희가 설정했던 그 어두운 공간에서 주인공이 맞닥뜨리게 되는 사물들은 정말 일상적인 것들이에요. 그런데 그것들을 더 낯설게 보이도록 방 하나에 사물을 딱 하나씩만 넣어두는 설정을 해놓았어요. 예를 들면 레드카펫은 우리가 일상을 살면서 많이 꿈꾸는 어떤 망상들 있잖아요. 그런 망상들을 레드카펫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저희 나름대로 표현을 해보았고, 비닐이 쌓여있는 사물들의 설정은 유용성이 보류가 된 느낌들을 풀어낸 것이었어요. 조명에 따라 변화하는 시계 같은 경우에는 어쩌면 주인공이 좌표를 잃어버린 상황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하고. 이불 같은 경우에는 우리가 노동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어떤 그런 느낌? 그러니까 이불은 아주 따뜻하고 부드럽고 우리를 덮어줄 수 있는 것이지만 아주 차가운 방. 시멘트 바닥에 딱 놓여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적나라하게 좀 보여줄 수 있는 요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했고.
돈: <결구> 촬영을 했을 때 못이 박혀 있는 나무토막에 달려있는 시계 같은 것, 레드카펫, 이불 등 이런 것들은 저희가 세팅을 해 놓은 것이 아니에요. 거기 이미 놓여있는 사물들이었고, 특히 쪽방에 들어갔을 때 사슴과 태극기가 정말 웃기게 배치가 되어 있었는데,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었어요. 저희가 사슴이 태극기를 바라보게 설정한 것이 아니고 청소부 아주머니들이 해놓으신 거거든요. 이렇게 만들어져 있는 공간 자체가요.
이: 영상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다시 터널 속으로 들어가서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데요. 하지만 이미 다른 세계를 경험한 주인공에게는 그러한 낯선 경험이 반복되는 일상이지만, 일상자체를 바라보는 시각 자체가 변화한 것 같아요. 일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현실을 바라보는 눈이 변화한 것처럼요. 그래서인지 마지막 장면에서 주인공이 찍은 비어있는 사진으로 끝나더라구요. 그런 부분이 이제는 좀 다르게 느껴졌고요. 그리고 무진형제의 기존 작품에서는 현실을 비판하는 그런 요소는 사실 좀 보이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 작품 같은 경우에는 조용히 현실을 전복하려는 힘이 느껴졌던 것 같은데요. 작품이 자기 내부의 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대한 뚜렷한 인식과 타인에 대한 관심에서 현실에 대한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게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효: <결구>에서 그 부분을 많이 드러내려 했어요. 마지막 엔딩 장면은 상당히 중요하죠. 거기서 우리가 각자가 담게 되는 이미지들이 무엇이고 무엇을 바라볼까에 집중했어요. 우리가 바라보게 될 세계가 앞으로 보이는 거죠. <결구>에서는 주된 노동에 초점을 맞추고 사람들이 일상을 살아가면서 이를 어떻게 풀어내고 변화시키는지 그 과정을 바라보았어요. 그래서 마지막 엔딩 장면을 남겨 놓았던 것 같고요.
무: '세상을 바꾸겠다', '혁명을 일으키겠다', '노동이 혁명이다' 이런 식의 주의와 주장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요. 저희를 지배하고 있던 시스템들이 무너졌을 때 과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너는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제일 솔직한 질문이라고 봐요.
돈: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라는 의문은 사실상 이 영상을 통해 저희가 관객들에게 듣고 싶은 질문이었어요. 저희들도 이 질문을 통해서 작중인물 M과 실제 그 당시에 그 상황에 놓여있었던 정무진 작가와 이 지점을 일치시키고 싶었던 게 저희가 노력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상의 마지막 장면의 주된 키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에서는 사각 통로가 자주 반복이 되는데요, 저는 사진을 많이 찍으니까 실제 M이라는 인물이 찍었을 때는 폴라로이드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라고 보였어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비어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이: 마지막에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라는 의문은 사실상 이 영상을 통해 저희가 관객들에게 듣고 싶은 질문이었어요. 저희들도 이 질문을 통해서 작중인물 M과 실제 그 당시에 그 상황에 놓여있었던 정무진 작가와 이 지점을 일치시키고 싶었던 게 저희가 노력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영상의 마지막 장면의 주된 키는 '프레임'이라고 생각해요. 영상에서는 사각 통로가 자주 반복이 되는데요, 저는 사진을 많이 찍으니까 실제 M이라는 인물이 찍었을 때는 폴라로이드 사진의 프레임 안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거라고 보였어요. 그래서 마지막 장면에 비어있는 폴라로이드 사진으로 관객들에게 질문을 던져보고 싶었어요.
무: 사람들이 보통 본인 인생을 책으로 쓰면 몇 권이 될 것이다 이렇게 얘기를 하잖아요. 이런 얘기 좀 위험할 수도 있는데, 사주에서는 '10년 대운'이라고 해서 '운이 10년마다 바뀐다'라고 하잖아요. 저희도 어찌 보면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약 10년이 지나고 나서 이전의 시기를 보면 지금의 생활과는 다른 과거가 있잖아요. 그때 어떤 계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삶에 있어서 절단 된다'라고 해야 할까요. 어떤 한 생이 있고 십 년의 생이 끝나는 지점. 아까 효영이가 말했던 주인공이 추락하는 찰나의 순간들이라는 것처럼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거나, 새로운 무언가에 눈뜨게 됐을 때 과거의 삶에 대한 마지막 부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과거의 삶이 이러했구나'라고 알 수 있는 그런 마지막 구절, 마지막 언어라는 생각이 들어서 '결구'라는 제목을 붙였어요. '결로'는 저희가 지하실을 돌아다니면서 굉장히 많이 발견했던 단어에요. 벽이나 유리에 이슬이 맺히는 건데, 그게 균열이 가는 지점에 굉장히 많이 쓰여 있더라고요. 그것들을 보면서 저희가 나름대로 해석을 했어요. 재밌더라고요. 한자로 보면 결(結)이 '맺히다' 혹은 '마지막'이라는 뜻이 될 수 있어 작품과도 맞는 것 같았고, 로(露)의 음은 '길 로(路)' 자도 될 수 있으니까요. 또 지하에 있는 여러 오브제들처럼 나름대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단어로 제시를 했다고도 볼 수 있겠네요. 관객분들이 나름의 해석을 할 수 있도록 여지를 남겨두었습니다.
이: '결구'라는 표현 자체가 어떤 상황이 나에게 다가왔을 때 결구라는 하나의 마침표로 끝나고 다음으로 넘어가는 그런 식으로도 해석할 수 있겠네요. 그럼 마지막 질문인데요.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효: 앞으로는 구상해 놓은 작업을 계속 하는 게 계획일 것 같아요. 작업하면서 또 구상을 해 나가고요.
무: 저희가 세 명이다 보니까 한 번 작업을 시작하려면 좀 걸리는 것들이 많아요. 각자 스케줄을 조정하고 현 상황에서 하나씩 해결해나가는 게 과제인 것 같아요.
돈: 꾸준히 작업하는 게 제일 중요할 것 같아요. 사실 저희가 작업 양이 많지는 않거든요. 서로 같이 열심히 주된 작업들을 하고, 또 작업을 알리기 위해서 많이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